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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ME 아내의 빈자리

작성일 2003-11-15 08:2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태석프란치스코 조회 1,258회 댓글 0건

본문

아내의 빈자리
성서에 “남편이 있는 사람은 없는 것과 같이 살고 ~”
라는 복음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현재 자신의
배우자가 건재하고 있지만, 없을 때처럼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요 ?
저는 그 생각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어느 노동조합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올려진, 아내를 일찍 잃은 어느 근로자의 고충을 털어놓은 글을 옮겨 싣습니다. 자신의 배우자가 현재 건재하지만 내년에도? 또한 10년 뒤에도 ? 건재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는 “있을 때 잘 하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현재까지 맡은 바 큰 역할을 잘 감내해 주고 있는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과 행복을 새롭게 느끼시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ㅇ. 제목 : 아내의 빈자리

아내가 어이 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밥도 할 줄 모르는 남편과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난 아내의 심정이 오죽했을까만 홀로 남게 된 남편인, 나는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 몫까지 해주지 못하는 것이 늘
가슴 아팠었다.

언젠가 이른 새벽, 아이에게 아침밥을 챙겨 주지도
못한 채 출장을 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먹다 남은 밥이 조금은 있었기에 계란찜만 얼른 데워
놓고 잠이 덜 깬 아이에게 대충 설명한 뒤 출장지로
내려가야 했다.
나는 전화로 아이의 아침을 챙겨 주느라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때 집에 돌아온 나는 아이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피곤한 나머지 저녁밥 생각은 뒤로 미룬 채 안방으로 들어가 양복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 순간 “푹!” 소리를 내며 빨간 양념 국물과
라면 가락이 침대보와 이불에 퍼지는 게 아닌가 !
뜨거운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이 녀석이...”
나는 옷걸이를 들고 달려가 장난감을 갖고 놀던
아이의 등과 엉덩이를 마구 때렸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 이불은 누가 빨라고
장난을 쳐, 장난을! ”
화가 난 나는 때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때, 아들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나의 매를 든 손을 멈추게 했다.
아들의 얘기로는 “밥솥에 있었던 밥은 이미 아침에 다
먹었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었는데 저녁 때가 되어도
아빠가 오시지 않으므로, 싱크대 서랍에 있던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스렌지를 만지면 안된다는 아빠의 말씀이
생각나서 보일러 온도를 ‘급탕’으로 누른 후 데워진 온수를 라면에 부어, 하나는 아이가 먹고, 하나는 아빠의 몫으로, 이불 속에 넣어 두었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잡수실 라면이 식지 않게 하려고....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나는 수돗물을 크게 틀어 놓고 펑펑 울었다 !
한참 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후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약을 발라주고 잠을 재웠다.
라면 국물에 더러워진 침대보와 이불을 치운 다음 아이의 방문을 열어 보니,
얼마나 아팠던지 자면서도 흐느끼고 있지 않는가 !
녀석의 손에는 엄마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저 문설주에 머리를 기대고 한없이 서 있었다.

아이와 그 일이 있은 지 1년 뒤
아이에게 엄마 몫까지 한다고 나대로는 신경을 많이 썼다.
아이는 이제 일곱 살, 얼마 후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간다.
다행히 아이는 티 없이 맑게 커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에게 또 한 차례 매를 들고 말았다.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떨리는 마음에 허겁지겁 조퇴를 하고 돌아와
여기 저기 찾아 보았지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이름을 외치며
애타게 찾다가 동네 문구점의 오락기 앞에서 아이를 만났다.
너무나 화가 나서 나는 아이를 때렸다.
그런데 아이는 한마디의 변명도 않고 “잘못했다!”"
라고만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은 유치원에서 엄마들을 모시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을 배웠다”라고 하며
자기 방에서 꼼짝 않고 글 쓰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 보며
하늘에서 아내가 미소짓고 있을 생각을 하니
나는 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 나올 때쯤
아이가 또 일을 저질렀다.
회사에서 퇴근하려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동네 우체국 직원이었는데 아이가 우체통에 주소도 안 쓴 장난 편지를 100여 통이나 넣는 바람에 가뜩이나 바쁜 연말의 우편 업무에 지장이 많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나는
아이를 불러 놓고 다시는 들지 않으려 했던 매를 또 들고
말았다.
아이는 이번에도 “잘못했다 !” 는 소리만 했다.
나는 아이를 한쪽 구석에 밀쳐 놓고
우체국에 가서 편지 뭉치를 찾아왔다.
그리곤 그 편지 뭉치를 아이 앞에 던지며
“도대체 왜 이런 장난을 쳤느냐 ?” 고 다그쳤다.
그러자 아이는 울먹이는 소리로 대답했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을 저미는 듯한 슬픔이 내 눈시울을 적셨다.
하지만, 아이가 바로 앞에 있던 터라 애써 눈물을 감추며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꺼번에 보냈느냐?”라고...
그러자 아이는 우체통의 편지 투입구가 높아서 키가 닿지 않았었는데, 요즘들어 다시 서 보니 그 투입구에 손이
닿기에 여태까지 써 왔던 편지를 한꺼번에 넣은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우체통의 높이 이상으로 아이의 키가 자란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막막했다.

잠시 후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하늘나라에 살고 계시니까 다음부터는 편지를 태워서 하늘로 올려 보내 !” 라고

아이가 잠든 후
나는 밖으로 나와 그 편지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
나는 궁금한 마음에 편지 몇 통을 꺼내어 읽었다.
그 중 하나가 나의 마음을 또 세차게 흔들었다.

“보고싶은 엄마에게 !
엄마! 오늘은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께는 엄마 생각나게 할까 봐 얘기도 못했어.
아빠는 나를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나는 일부러 아빠 보는 앞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아빠가 야단치셨는데 난 끝까지 얘기 못 했어.
‘엄마, 요즘도 아빠가 엄마 생각나서 매일 우는 거 본다?’
아빠도 나만큼 엄마가 보고 싶은 가 봐!
그런데, 나 엄마 얼굴이 잘 생각 안 나.
내 꿈에라도 한 번만 엄마 얼굴 보여 줘, 응?
보고 싶은 사람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잠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대.
그래서 나 매일 엄마 사진 안고 잔다 ?
그런데 왜 엄마 안 나타나! 응?”

그 편지를 읽고 나는 또 엉엉 울고 말았다.
도대체 아내의 빈 자리는 언제쯤 채워질 수 있을까 ?


경기도 고양시 행신2동본당 소속
서울 ME 841차 (2002. 9. 15)
양태석 프란치스코, 임진순 데레사 부부























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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