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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서 주님을 만나고 느낀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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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남정 댓글 0건 조회 2,247회 작성일 2016-06-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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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겪었던 체험과 주님을 뵈었던 수기

옥봉성당 김경술 (마티아)


저는 1956년 3월 16일생으로서 진주 옥봉 성당에 다니고 있는 김경술 (마티아)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전 몇 번을 망설였지만 사람들에게 제가 당한 고통을 알리고 주님은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해서 좋은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체험들을 겪기 전에는 성당을 나가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고 저는 2016년 올해 주님과 성모님께 저의 잘못 살아온 인생과 잘못함 모든 죄를 빌면서 회개했습니다. 주님은 회개는 인생의 밑바닥 부처 다시 시작 할 수 있게 해주고, 천국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첫 걸음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도, 회개와 동시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보잘 것 없는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저의 첫 체험은 21년 전 1995년 4월 28일 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지옥 문턱에서 마귀들에게 휩싸여 끌려 갈 뻔 했습니다. 그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잠깐 잠든 사이에 간 곳이 있는데 그 곳이 천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은 장미꽃과 백합 등 수많은 꽃들로 이루어져 정말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경험들로 미루어 저는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두 번째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희귀병인 근무력증에 걸려 합병증으로 폐렴까지 와서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주치의로 계시던 신경과 교수님께서 여러 차례 생명이 위험하다고 하셨고, 결국 저는 중환다실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몇 달을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중 갑자기 제 영혼이 제 몸에서 빠져 나가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제 몸과 간병인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귀들 여러 명이 칼과 도끼로 빠져나온 저의 영혼에 난도질을 했습니다. 저는 그 고통에 주님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믿음이 깊지도 않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진 지만 그 순간 ‘하느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하고 겁에 질려 수차례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저 에게 성경에 있는 구절을 이야기 해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때 주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렸는데 그러고 깨어보니 저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되뇌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제가 의식이 없었는데, 기적적으로 깨어났다고 놀라워했습니다.
퇴원해서 그 때 들었던 음성을 되뇌어 보니 루카 16장 19절에 있는 부자와 라자오 복음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퇴원해서 읽어보아도 그 뜻을 몰라서 지나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그때의 주님 음성이 생각나 그 성경 구절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어보니 그 뜻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루카 16장 19절은 부자가 호화롭게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갔는데 , 곧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누워 부자의 대문 앞에서 누워 부자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랬던 라자오도 죽었는데 거지 라자오가 죽자 천국의 천사들이 다가와서 라자오를 데리고 갔습니다. 천국에서 라자오가 아주 평온하게 있는 모습이 보여 부자는 회개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라자오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제 다섯 형제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으로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간절히 부탁을 하니 아브라함이 이르기를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말하기를 안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이들 가운데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를 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르기를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 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제가 이구절을 잘 생각해보니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습니다. 이글을 읽고 저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이 글은 한 점의 거짓도 없습니다. 감히 거룩한 주님의 이름으로 제가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이제 나이가 들어서 죽음이란 단어가 가까이 다가오니 지옥이 있다는 믿음이 더 강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말 하고 싶습니다. 정말 지옥과 천국은 종재 한다고 말입니다.
저도 그러한 믿음 때문에 주님께 매달리면서 기도와 회개를 열심히 하고 이렇게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교황님과 주교님, 사제분들과 수도자들의 삶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분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만을 위해 봉사하고, 주님의 뜻을 사라들에게 전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주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그 분들의 삶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닮아가려는 마음에 여러분께 이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주님을 믿으며 열심히 기도하고 회개하여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저는 1956년 3월 15일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 이렇게 어머니가 두 분 계십니다.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성함은 김태순 이십니다, 낳아주신 어머니께서 제가 2살 때 저를 전북 장계 성당으로 데리고 가서 유아세례를 받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아버지는 제가 4살 때 헤어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길러주신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1949년 대한민국 국방부 창설 때 육군하사관을 지원하셔서 육군에서 근무하셨습니다, 그러던 와중 6.25사변이 터졌고, 아버지는 6.25사변 첫날에 우상 발부 관통 총상으로 부상을 입고 8개월 동안 부산 육군 을2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다고 국가 보훈청에 기록 되어있습니다. 퇴원하고 나서도 아버지께서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우셨고 부상을 또 당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백마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우신 공으로 은성 화랑 무공 훈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6.25 전쟁이 끝나자 충남 논산 훈련소 훈련 교관으로 배치되면서 육군상사로 근무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부대에 근무하시면서 사병들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를 큰개를 키우고 있는 29연대 연대장 집에 가져다주었는데 그 곳에서 연대장의 동생인 제 어머니를 만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저와 여동생 김경순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 여동생은 태어나자마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고 동생이 죽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충남논산 외할아버지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결혼식도 치루지 않고 아이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받아주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외갓집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전라북도 전주에서 지내다가 지금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 이복례씨(마리아)를 만나서 사귀다가 절 데리고 진주로 왔습니다.
저를 데리고 도망을 왔는지 그냥 올라왔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가 18살 되던 해에 지금 어머니의 외갓집으로 버스를 타고 올라가던 도중 버스 안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저를 쳐다보면서 불쌍하다고 수근 거렸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 자세히 들어보니 아버지와 길러 주신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저를 낳으신 어머니가 그 버스 뒤를 울면서 쫒아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고 저는 그때부터 반항심에 술을 배웠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폭력을 일삼았고, 술에 빠져 살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살아온 과정을 찬찬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경남 진주 칠암 성당 성모유치원을 졸업하고 경남 진주 봉래 국민 학교에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 저는 지금어머니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고 결국 3학년 때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찾으러 집을 나왔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찾으러 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객지에서 5년 동안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5년 동안 방황하면 살던 도중 운이 좋게 다시 진주로 돌아오게 되었고 아동보호소에서 지내면서 봉래 초등학교에 다시 들어가 초등학교 공부를 마치고 진주 칠암 성당 가톨릭 재건 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74년 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철공소에 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철공소에서 용접을 배우면서 진주 경남 연탄 공작반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운동도 열심히하고 음악을 배워 드럼을 치면서 내마음속에 있는 저를 낳으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대한 국술원 합기도에 다니면서 운동을 했는데 거기서 한 여고생을 알게 되어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와 저는 진심으로 사랑을 했고 그녀는 제 마음속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는 우연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폭력적인 행동을 많이 하고 나쁜 쪽으로 휩싸이면서 결국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녀는 저의 이별 통보에 충격을 받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헤어지자고 한 말이 아닌데 그녀는 진짜로 믿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녀가 떠난 뒤 저는 거의 미쳐 있었습니다. 정말로 서로 사랑 했었는데 그녀에게 왜 헤어지자고 했는지 저는 후회에 휩싸여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떠나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더 방황을 하기 시작해 폭력을 일삼고 술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2년, 2년이 지난 후 우연히 그녀의 집 앞을 지나는데 그녀가 부산에서 2년 만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만난 그녀에게 그때 왜 헤어짐을 고했는지 설명하고 빌며 그녀를 붙잡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별짓을 다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저는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여전히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방황 하며 살았습니다.
1976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셔서 나라에 국가 비상 계엄령이 내려져 나라가 시끄러웠을 때 저는 계속 방황을 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12월 친구들과 시내에서 술을 마시다가 선배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졌는데 제가 화를 참지 못하고 깨진 소주병으로 선배 왼쪽 눈을 찔러 버렸습니다. 저는 겁에 질려 도망을 쳤고, 저는 살인미수 혐의로 전국에 기소중지 수배가 되었습니다. 저는 전국으로 도망을 다니다가 3년 만에 기소중지 자수 기간에 자수를 하였습니다.

저는 마음을 잡고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열심히 살아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나아지시나 했더니 교통사고 후유증과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고만 치고 효도도 못했는데 ······. 아무리 후회해도 아버지는 더 이상 제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국가 보훈청에 신청을 하지 않아서 살아 계실때 국가 보훈청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아 길러주신 어머니에게 드렸고 어머니는 그 돈으로 하숙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돌아 가신 뒤 길러주신 어머니에게 더 정을 붙일 수 없어서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낳아주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갔습니다. ‘ 아 진짜 내 옆에는 이제 아무도 없구나.’ 이런 생각에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옥봉 성당 예수님 상 앞에서 “주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하고 울면서 주님께 매달리고 외쳤습니다. 그 당시 신앙이 크지는 않았지만 이제 믿고 의지 할 것은 주민 밖에 없다는 것을 제 스스로 마음으로 인지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몇 개월이 지나고 아파트 배관작업을 마치고 회식을 하고 나오는 길에
차에 치여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인대가 파열되어 6개월 동안 병원 생활을 하였고 경미한 장애진단이 나왔습니다. 보상금으로 3100만 원정도 나왔고 그 돈을 받아 길러주신 어머니에게 조금 드리고, 남은 돈으로 저를 낳아 주신 어머니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진주 시청부터 전라도 까지 전부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제 어머니의 대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찾다 우연히 동사무소에서 아버지 재적 등본을 보다가 아버지의 군번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창원 지방병무청에 가서 아버지 군번을 대조해보니 딴사람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육군본부에 민원을 넣고 병무청 보훈청에 민원을 넣어도 딴사람이 나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육군본부에서 아버지 본 군번과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기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고 보니 예전에 큰집에서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나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보훈청에 가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였더니 부산 사상 총무처 기록 보관소에 가서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총무처 기록 보관소에 찾아가서 할아버지에 대해 여쭤보니 할아버지가 일본 순사들한테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것은 맞는데 형무소에서 복역한 기록이 없어서 독립유공자로는 등록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독립유공자 등록은 포기하고 아버지만 국가유공자로 등록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995년 제 여동생이 경찰인 매제와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날짜를 5월로 잡았는데 5월은 성모 성월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성당에 나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모성월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1995년 4월 28일 저녁 10시쯤 저는 잠을 청하기 위해 불을 끄려고 했는데, 방 한쪽 구석에 사람형상을 한 물체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당시 성당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방에는 묵주와 기도서, 예수님 상이 집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무서운 마음에 방안에 있는 카톨릭 기도서와 묵주를 들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묵주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묵주만 든 상태에서 기도서만 보고 기도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 제 앞으로 마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저는 기도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기도서에 글자들이 의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귀들이 기도를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앞에 뱀들이 나타나 온몸을 감기도하고, 제 몸만한 구렁이가 제몸을 뜯어 먹는 형상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동생과 어머니를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고 마귀들이 묵주를 싫어 한다는 말에 묵주를 걸치고 기도하고 마귀들에게 묵주를 가까이 대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밤새도록 마귀들의 괴롭힘에 시달렸고, 저는 기도 책을 놓는 순간 마귀들에게 잡혀갈 것 같아 기도 책을 놓지 않은 채로 하루를 꼬박 보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때 아침인데도 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제 여동생이 방문을 열고 저를 부르며 들어왔습니다.
동생은 식은땀을 흘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를 보고 깜짝 놀라 어머니를 제 방에 데리고 왔고, 어머니는 기도 책과 묵주를 들고 떨고 있는 저를 보고 급히 가서 성수를 가지고와 성수를 저에게 뿌렸습니다. 어머니가 성수를 뿌리는 순간 저는 정신이 돌아 와서 방에 뻗어버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성수를 뿌리니 마귀들이 바로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제가 일하는 설비회사에 출근을 했지만 그 고통을 생각하니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전 근무만 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굿을 하자고 했고, 어머니는 그 말에 크게 화를 내시면서 가톨릭신자 집안에서 무슨 굿을 하자고 하냐며 나무라셨습니다.
저는 사실 30년 동안 이나 성당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놓고 전날 밤에 당한 일들이 무서워 예수님과 성모님께 간절히 빌고, 또 그 일이 무서워 어머니께 굿을 하자고 한 제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무라시면서 지금이라도 성당에 열심히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방으로 돌아와 전날밤일을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제가 제 트럭을 몰고 하늘로 올라갔고, 눈에서는 피가 번쩍하고 나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잠에서 R깨어보니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러고 또 다시 잠이 들었는데 그때는 제 영혼이 제 몸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 웬 사람이 나타나 손에는 돌을 들고 제에게 “네가 자동차로 사람을 쳤으니 돈을 내놔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고를 낸적이 없다고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쌩 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여전히 침대 위에 있었습니다. 저는 잠에서 깨어 불안에 떨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절대 잠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또 잠이 들었고 또 꿈속에서는 제 영혼이 빠져 나갔는데 그 때 또 두 사람이 나타나 네가 자동차 사고를 내었으니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못 간다고 소리를 지르고 몸을 돌렸고 순간 쌩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하늘색 이불이 저의 몸 위에 있었고 눈을 떠보니 웬 여자가 저에게 “내가 널 낳은 엄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또 눈에서 번쩍하고 피가 보였습니다. 저는 그 여자의 말에 의구심을 품으며 하늘색 이불을 챙겼는데, 하얀 소복 입은 여자가 나가면서 다른 젊은 여자를 가리키면서 “저 분이 너의 고모님이시다”하니까 그 다른 여자가 저를 쳐다보며 나갔습니다. 고모님이라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니 그 여자는 얼굴이 창백하고 싸늘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들을 따라 갔는데, 그 곳에는 그 여자들은 없고 남자 두 명이서 저에게 “여기는 왜 왔느냐고”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아버지 같았습니다. 그 때 그 남자들이 없어지고 괴물 같은 짐승 두 마리가 저에게 달려왔고, 또 한 쪽에서는 온 몸에 부스럼이 난 사람이 저에게 달려 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침대 위였고, 또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갔고 주위를 보니 상당히 낡은 집들이 여러 채 있었는데. 그 곳이 저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낡은 집 중 한 채에서 어떤 사람이 방문을 뚫어 붕대를 감은 손만 내놓은 채로 엉엉 울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귀가 저를 속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도망을 갔고 도망을 가다보니 큰길이 나왔고 큰길을 따라가다 보니 자그마한 강이 나왔습니다. 그 강에는 여자 세 명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여자들 머리에는 수녀님들이 쓰는 까만색 보자기 같은 것들이 씌워져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기도를 드리는 자세로 앉아 있었고, 저는 그 분들 뒤에 앉았습니다. 그 분들 앞에는 동그란 원탁 탁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형상을 한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다 마귀였습니다. 저는 수녀님처럼 보이는 그 분들 뒤에 앉아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마귀 중 하나가 걸어오면서 머라고 중얼 거리면서 그 분들 앞에 있는 원탁을 엉덩이로 부셨고, 저는 깜짝 놀라 무서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세 분 중 한 분이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며 안심하라는 듯 온화하게 웃으셨고 그 때 바라본 그 분의 얼굴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장소로 옮겨졌지만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그러다 저는 그곳에서 나왔고 나온 곳에는 마귀들이 부동자세로 서있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도망을 쳤고 , 마귀는 계속 저를 따라오면서 자기와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계속 도망을 쳤고 도망을 치눈 도중 옆을 보니 자그마한 강에 다리가 놓여있었습니다, 저는 그 다리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저승 가는 다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다리를 보고 사람들이 그 다리를 건너지 않고 물에 빠지면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물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그곳에는 아주 큰길이 뻗어나 있고 그 길의 끝에는 2명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가 보였습니다. 저는 순간 저 검문소만 지나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검문소를 향해 뛰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마귀가 또 갑자기 나타나 자기와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체험을 당할 때 마귀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마귀는 순복을 입고 있었는데 저는 아버지가 저승에서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마귀의 손을 뿌리치려고 노력했지만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때 검문소에 있던 분 중 한 분이 저와 마귀를 떨어뜨려 주셨고 저는 그렇게 깨어났습니다. 저는 저승에서 나를 구해준 사람이 누굴까? 혹시 않아주신 어머니일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의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니 어머니께서 저를 구해 주신 분은 성모님 같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런 체험을 당하는 동안 어머니는 저를 위해서 밤새도록 기도를 드리고 있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럼체[험을 하고 며칠 뒤 성모 성월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 지금 부터라도 성당을 열심히 다니면 되겠느냐고 했고 어머니께서는 성당에 나가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드리고 성당에 정말로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방황을 하면서 인간이 죽으면 끝이지 무슨 저승이 있겠나 하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직접 체험으로 겪어보고 나니 ‘아 정말 저승이 있구나.’하고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 부터라도 아주 열심히 성당에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또 한 뒤에 고해성사를 위해 종이에 제가 지은 모든 일들을 적기 시작했는데, 30년 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인지 지은 죄가 꽤 많았습니다. 저는 제 죄를 종이에 다 적은 후에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였고 신부님도 제 얘기가 적힌 종이를 보면서 조금 놀라시는 눈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5월 성모성월이 시작 되었습니다. 첫 성모성월 행사 때 저는 간정이 격해진 나머지 눈물을 비 오듯 흘렸습니다. 저는 저를 저승에서 구해주신 분이 성모마리아님 인 것을 알고 그때부터 성당에 열심히 다니며, 레지오에도 가입하고, 창조주의 어머니에 가입해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또 충북 음성 꽃동네에 열심히 기도하러 다니면서 장애시설에 물질적인 도움도 주고 강원도도 다니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문득 그날일이 생각나 큰집에 전화해서 혹시 돌아가신 고모님이 계시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한분 살아계신 90세 넘으신 고모님께 여쭤보니 놀라시면서 아주 어릴 적 돌아가신 고모님이 계시는데 아주 오래전 일이라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체험을 당하였고 그 속에서 고모님을 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그 당시 45살인 제가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가징 것이 아무것도 없고 능력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 분이 조선족 여자를 소개시켜주었는데 그 여자는 저와 20살이 차이가 났고, 결혼도 한번 했다가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저것 따질 데가 아니 였기 때문에 그 여자를 집에 데려가 인사도 시키고 , 동거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그 여자와 사는 것이 주님 앞에 죄를 짓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여자를 소개해준 지인과 그 여자가 엄청 큰돈을 요구했고 지인에게 배신당했다는 충격에 진주를 떠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여호와 증인을 믿는 사이비 였습니다. 저는 진주를 떠나 충남에 있는 사촌동생에게 올라갔고 그 곳에서도 어머니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진주로 내려왔습니다.
진주로 내려와서 저는 타락한 삶을 살았고 어느 알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눈이 따끔거리고 몸이 이상한 것을 느껴 병원을 찾으니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길로 대학병원을 갔고 , 감기나 폐렴에 걸리면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하는 무서운 희귀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이런 생각이 들어 괴로운 마음에 또 다시 끊었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감기와 폐렴에 걸려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몇 번이나 실려 가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때는 병원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였는데도 그동안 열심히 성당을 다녀서 마귀들한테 시달리는 고통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은 진주 중앙시장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저는 빈털터리로 집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집에서 가까운 상봉서동으로 이사를 하였고 집안 벽에 예수님상과 성모님 상을 걸어 두었습니다. 아주 큰 예수님 상을 보면서 때로는 울기도하고 때로는 술에 취해 인생에 대해 하소연 하시도 했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살고자하는 의욕도, 어떠한 희망도 없었습니다. 저는 또 방탕한 생활을 하고 성당에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제 앞에서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제가 놀라 벌떡 일어나보니 텔레비전은 없고 바닥에 낙엽이 깔려 있었습니다. 놀라서 다시 보니 다시 텔레비전이 보였습니다. 그 뒤로 저는 또다시 마귀들한테 시달리기 시작 했습니다,저는 예전에 마귀들에게 시달리며 저승을 본 생각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고 이대로는 안 되겟다는 생각에 성당에 다시 나가기 시작해 그런 현상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한 일 년쯤 지나 저는 또 성당에 나가지 않고 매일 술을 마시고 취하는 방탕한 생활을 했고 또다시 꿈속에서 마귀들에게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마귀들과 싸우기도 했고, 묵주를 들고 대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당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생각에 옥봉 성당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성당에서 보좌 신부님이 저를 안고 마귀들에게서 저를 막아주셨습니다.
그당시에 그런 체험을 당할 때 제 이야기를 믿어주신 분은 강영구 주임 신부님과 보좌 신부님 이셨습니다, 강영구 주임 신부님과 보좌 신부님은 제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어주셨고 좋은 복음 말씀을 써서 저에게 주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마귀들에게 잡혀가서 여러 가지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옥 불에도 빠지고, 마귀가 사람고기를 먹으라고 주기도 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가니 수많은 영혼들이 강물 속에 사람의 형상으로 잠겨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갔는데 그곳에서 잠이 들어 자고 일어나니 옆에 마귀 같은 부인과 마귀 같은 아이가 자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저승과 이승은 똑같았습니다. 또 마귀들한테 지옥으로 잡혀갔는데 마귀들은 그곳에서 저를 불에 달군 커다란 쇳덩이가 2개 있는 구덩이 속으로 저를 집어넣었습니다. 마귀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 속의 온도가 5000도라고 했습니다. 마귀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저를 보며 고기기름이 나온다며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주님께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 곳에서 벗어나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 위에는 고운 색동저고리를 입은 남자와 여자가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그 분들을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계속 마귀가 저를 따라와 기다란 쇠꼬챙이를 제 입속에다가 쑤셔 넣었고 놀라서 깨어보니 저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진주 옥봉동에 있는 장수탕을 갔습니다. 거기서 목욕을 하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제가 누워있는 소파 의자를 차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일어나 1층에 있는 카운터에 가서 마귀가 저를 괴롭힌다고 얘기했는데 카운터에 있는 주인들도 다 마귀였습니다. 저는 또 놀라서 깼는데 여전히 소파 의자에 누워있었습니다. 정말로 마귀들을 저를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길로 다시 성당에 나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그런 현상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장수탕 근처에 어떤 자가 리어카를 끌고 생선을 팔고 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고, 저는 키도 크고 날씬하게 예쁜 그녀가 살기 우;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녀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그녀와 저는 서로 마음이 통하여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중학생 딸이 있었는데 그녀도 딸과 둘이 사는 삶에 지쳐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저를 만났고 저희는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중학생이었던 그녀의 딸은 대학 졸업반이 되었고 저도 그녀를 만난 술을 아예 끊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교회를 나가다 나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제가 성당에 나가자고 설득하여 옥봉 성당에서 세례도 받고 황봉철 신부님께 혼인성사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 성서 신약 구약을 2번이나 써서 성경 필사증을 2번이나 받았습니다.
두 번째 축복 장 받을 때에는 2013년 11월 10일에 마산 가톨릭 재단 성지 여고에 가서 주교님께 직접 축복 장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10년 동안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9월 25일 저는 자다가 오한을 느껴 잠에서 깼습니다, 잠에서 깬 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추위에 시달렸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19를 불렀는데 빨리 오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택시를 잡아 경상대학교 병원으로 갔습니다, 경상대학교 응급실에서 검사를 했는데 급성 패혈증에 원래 있던 근 무력증까지 합쳐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부인에게 가족들을 다 불러 라고 했고 저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집수리를 맡기셨던 자매님께 전화가 왔고 그때 부인이 제 얘기를 해 자매님이 놀라 성당에 연락을 해서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중환자실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저에게 와서 병자 성서를 드렸습니다.
저는 아예 가망이 없어서 때문에 장례식장까지 다 마련을 해놓은 상태에서 저는 13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덕분으로 마귀들에게 시달리는 증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큰소리를 내면서 계속 우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깨어나서 지금까지 치료도 잘 받고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교수님께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망이 없던 제가 기적적으로 완치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저와 집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 집사람도 이런 일이 있고나서 제가 다니기 때문에 별수 없이 다니던 성당을 이제는 믿음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기금까지 제가 겪은 체험은 하나의 거짓도 없는 정말로 제가 겪은 체험담입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를 구원해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죽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선교 활동도 열심히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주님께 갈 것입니다.
지루하셨을 텐데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에게 항상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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