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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ME "가계치유"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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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주도령 댓글 0건 조회 2,856회 작성일 2007-11-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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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교구 교구장 사목적 권고 ╬
‘가계(家系)치유’ 무엇이 문제인가?
-건전한 신앙생활을 위협하는 최근의 가계치유 문제에 대하여

지난 2007년 10월 15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진행된 추계 주교회의에서는 교회 일각에서 심각하게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이른 바 ‘가계치유’, ‘가계정화’의 신심행위는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신앙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데 주교회의가 의견을 같이하고 이 문제를 교구별로 지혜롭게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본당의 신부님들께서는 문제의 심각한 본질을 잘 이해하시고 강론과 교육을 통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가계치유’의 그릇된 신심행위의 문제를 복음의 빛에 비추어 설명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1. ‘가계정화(淨化)’라고도 불리는 가계치유는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육체적, 정신적, 영성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계치유기도문’과 ‘미사(성체성사)’를 통하여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입니다. 곧, 자신의 가계(家系)안에 어떤 조상들이 무엇인가 한(恨)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 있거나 혹은 조상들이 지은 죄가 있을 때 그것의 좋지 않은 영향이 현재에 미치기 때문에 미사나 기도를 통하여 그러한 것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가계치유기도’는 개인적인 기도모임을 통해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 되어졌고, 이 모임을 통해 ‘가계치유를 위한 기도’문이 작성되어 전국에 유포되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기도회나 강의를 통해 이러한 ‘가계치유’설을 유포하고, 몇몇 신자들은 그에 따른 미사예물을 거두어 들여 사정의 전후를 알지 못하는 사제들에게 미사를 부탁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릇된 신심행위는 몇몇 교구의 ‘성령쇄신 운동’을 통해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고, 그것이 민간신앙, 무속과의 교묘한 접합점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가톨릭교회의 연옥에 대한 교리와, 교회의 오랜 전통인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죽은 이들을 기념하는 미사성제(연미사)의 본질을 왜곡하며, 교회의 전승(Traditio)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가지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사예물을 정성스레 준비하여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 형제, 자매, 친지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특별한 때(위령성월이나 민족의 고유명절, 기일 등)에 미사지향을 두는 것이나 조상들을 위해 연도를 바치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며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미사의 횟수나 미사예물의 금액이 가계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제시된다면, 이는 거룩한 신앙의 전통을 속된 것으로 오염시키고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파괴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3. ‘가계치유’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그릇된 신앙생활입니다. ‘환경 탓’, ‘조상 탓’으로 모든 문제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삶과 신앙의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 창조주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더 큰 죄일 수 있습니다. 죄와 환난의 책임을 조상에게 돌리고, 더군다나 저주의 배후에 ‘마귀’가 있다는 설명은 건전한 신앙생활을 미신과 무속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가계치유기도문’을 바치거나 미사예물을 많이 바치고, 많은 횟수의 미사를 지낸다고, 가계에 문제되었던 모든 것이 다 치유되고 모든 고통이 사라지게 되어 만사가 형통(亨通)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종교는 ‘고통이란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겪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고통은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지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실존 그 자체이며 자연의 법칙인 고통을 외면하고 피해가겠다는 가계치유의 기도와 신앙은 그 근본적인 방향이 잘못되어졌습니다.

4. ‘가계치유’의 기도모임을 통해 밝혀지는 그들의 종말론적 증언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현대의 신학 안에서의 종말론과도 커다란 불일치를 보여줍니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닌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가계치유’에 대한 신심 확산의 밑바탕에는 신자들의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핵심 에너지로 작용합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동시에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입니다. 곧 죽음은 어둠과 고뇌와 냉혹함, 고립, 두려움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정과 빛과 사랑과 기쁨에 들어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종말교리는 죽음 이후에 인간은 사심판에 놓여 지며, 이는 그의 삶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며, 심판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살았는지 주님의 말씀과 행위가 바로 심판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심판’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주는 신앙이 아닌 희망의 신앙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좋지 못한 것들은 주님의 자비와 은총에 힘입은 신앙인의 회개와 노력으로, 끊임없는 영적인 투쟁을 통하여 극복되어 가는 것이지 조상의 죄와 죽은 영혼이 치유를 받아서 극복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5. 교회의 세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교리인데, 가계치유에서는 그 ‘죄가 (소멸되지 않고)유전된다’ 는 커다란 신학적인 문제를 가집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인간이 알아듣는 표징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초월적 권능을 기억하고 보전하고 구현하는 그리스도의 성사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인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세례성사’로 먼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합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새로운 생명의 표징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며, 죄(원죄와 본죄)를 씻어내는 것이며,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씻어진 죄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란 믿음은 세례성사의 (은총)효과를 부정하는 것이며, ‘원죄’를 넘어선 ‘조상 죄’의 대물림은 인간에게 더욱 큰 죄의 부담을 주어 사랑과 위로, 기쁨과 희망을 주어야 할 신앙이 그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6. 우리나라의 가정 해체 현상과 가정의 위기는 심각한 사회문제임과 동시에 그릇된 신앙을 유발시킬 수 있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계치유’에 관련된 최근의 문제들을 접하면서 ‘왜 이러한 문제들이 신자들 가운데 빠르게 확산되어졌는가?’ 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가정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나약한 인간은 문제의 원인을 가정의 위기에서 찾아 개선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들의 원인을 조상들의 문제로 치부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책에서 멀어집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즉시하고, 상처받은 가족 구성원을 위한 다양하고 폭 넓은 프로그램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가족치료(Family Therapy)와 상담을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가족 복지 정책과 가정 사목을 위한 교구의 정책을 보다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혼자와 재혼자를 위한 프로그램의 준비, 도박 중독과 알콜 중독자 가정을 위한 배려, 가정폭력으로 고통 받는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독거노인과 편부모, 조손(祖孫) 가정에 대한 배려 등을 교회 정책 안에서 연구하고 구체적인 사목의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7. 교회의 대형화, 중산층화의 최근의 경향은 마음으로, 영으로 가난한 이들의 자리를 교회 내에 마련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계치유 모임에 참여하는 신자들 가운데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놓여 있는 사람, 오랫동안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마음에 큰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 사회적인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 이들 대부분은 현실세계에서 당하는 고통에서 치유와 위로와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러한 점에서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을 마련하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신앙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의 교육, 피정, 연수의 형태로 진행되는 많은 영성프로그램들은 그 참여비용이나 시간이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고액, 장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혹은 자신을 극기하고 참된 자아를 바라보면서 주님을 만나야 하는 피정(避靜)의 시간이 세상 일(먹고 마시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어 피정 본래의 균형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재로 그리스도의 절대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특별한 비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대규모집회에 참여하여 신앙을 갈구하지만, 이러한 모임도 알맹이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교회 공동체는 참된 신앙의 길과 주님의 길을 찾기 위한 모든 교육에 있어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과 가치(價値)에 보다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8. 이러한 건전한 신앙생활을 위협하는 신심행위의 식별(識別)과 대응을 위해 그리스도 신자들은 스스로 성서에 대한 지식과 함께, 오랜 종교체험과 역사체험을 통해 쌓아온 교리와 신학에 대한 지식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신자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구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엇보다 성서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부터 힘을 얻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가 인류의 역사 안에 어떻게 베풀어졌는지를 알려주는 기쁜 소식이며 계시의 원천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잘못과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희망하며 살아온 삶의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성서는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조차 하느님께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을 맡겼을 때 하느님의 구원이 어떻게 베풀어 졌는지를 의인들의 삶과 죽음,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모든 인간이 행복과 구원의 완성인 하느님 나라로, 바로 ‘모든 것의 모든 것’인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한 14,6).

글을 맺으며
그리스도교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종교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이러한 건전하지 못한 제반의 종교적인 흐름은 환시나 기적, 메시지 중심의 특별한 현상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치유와 복을 신앙의 중심으로 오해하는 신자들의 기복적인 신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의 신앙과 신심이 감상과 감정에 기울어져 교회의 전통과 교의마저 위협하는 감정적 혼합주의, 무비판적 신심 수용으로 가톨릭 신앙의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약화시키는 그릇된 신심행위가 교회 안에 존재(存在)합니다. 평범한 일상 안에서의 삶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신앙의 길을 도외시하고 신비하고, 자극적이며 선동적인 신앙의 구호나 초자연적 현상으로 포장된 신심행위로 나아가는 것은 지극히 우려되는 현상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용서를 믿으며, 용서하시는 분의 자비를 믿으며, 아무 탓 없이 맞아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거룩하게 살도록 배려하시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구원, 해방은 인간의 죄에 앞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사업에서 어느 누구도 제외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그리스도는 바로 이 사랑 때문에 참 사람이 되신 참 하느님이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며 개개인이 완전히 새로워지는 새로운 창조를 체험합니다. 세례로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새 옷처럼 입고 사는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으켜진 사람이(콜로 2,12)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숙을 지향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신앙인은 기도한 것을 행하고, 행할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평생 신앙을 위한 학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여러 가지 의문들은 스스로 묻지 않으면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들이며 듣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 또 그 너머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물음을 제기해야 합니다. 인간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그리고 창조된 세계와 자연 피조물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고, 성경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며 더욱 더 깊은 신앙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의 소명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교회의 전통 신앙, 특별히 사도들의 신앙고백(Credo)에 충실하면서 성모님의 간구를 청하고,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의 전구를 청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길을 따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꿋꿋이 걸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오늘 우리는 왕으로 선포합니다. 평화가 항상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11월 25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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