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박용만(실바노, 59) 회장은 외할머니의 만두를 잊지 못한다.
어린 시절,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외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일미사를 거르는 일이 결코 없었다. 묵주기도는 매일 바쳤다. 외손주가 외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칭얼대도 외할머니는 "이 할미가 하느님 뵈러 갔다 오는 게 내 새끼한테도 좋지"하며 성당으로 향했다.
손주의 손을 떼어놓고 성당에 간 외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사온 건 만두였다. 그가 정신없이 만두를 먹다가 "할머니도 하나 먹어"하고 내밀면 외할머니는 먹는 시늉을 하며 만두를 받아뒀다가 손주가 다 먹고 나면 그 만두를 다시 내밀었다. 그는 천주교에 입교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할머니와 만두를 함께 떠올렸다.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아버지가 되고 나서 성당을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
'강력한 사람들의 따뜻한 집단'을 표방하는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을 십자고상이 걸린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 | ▲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은 돌봄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성과주의를 지향한다. |
돌봄과 배려로 성과를 내라
117년 역사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두산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핵심가치로 사람 중심의 경영을 해왔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산업기반 설비와 기계, 건설 등 인프라 지원사업과 소비재 사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4월 2일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취임식에서 "따뜻한 성과주의를 통해 인재를 키우겠다"고 밝혔다.
따뜻한 성과주의는 끊임없이 경쟁을 유도해 도태되는 사람을 가차 없이 내보내는 경영이 아니다.
"따뜻함의 반대는 무관심, 냉혹입니다. 내부 경쟁이 전혀 없을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 역량을 정확히 파악해 육성하자는 것이지요."
그는 올해부터 후배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육성했는지를 인사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임원이 부하 직원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도 포함했다.
"100명의 신입사원이 모두 사장까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느 기업이나 조직은 피라미드 형태이기 때문에 올라가면서 누군가는 떠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그 과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조직은 따뜻할 수도 냉혹할 수도 있습니다."
박 회장은 "인간을 도구화해서 경쟁의 결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돌봄과 배려를 통해 구성원 역량을 파악해 육성하면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역량을 알고 상처받지 않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운영은 각박하고, 회사생활은 기계적으로 돌아가기 쉽다.
대기업 총괄 CEO로서 업무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박 회장은 일하면서 오는 괴로움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가상의 원을 그려보세요. 그 원은 제 자신이 가진 역량의 한계입니다. 하나는 원 밖의 일을 이루고 싶을 때 괴로움이 오지요. 내 역량을 벗어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원 안에 있는데 내가 충분히 하지 않아서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집니다."
박 회장은 "원 밖에 있는 역량은 내 역량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이 안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를 분명히 알고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스트레스를 없애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따뜻한 집단의 소통 잘하는 CEO 박 회장은 젊은이들과 소통을 잘하는 CEO다.
신입사원들과의 술자리와 야구를 좋아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SNS를 통해 다양한 이들과 소통을 즐긴다. "회사 가기 싫다"는 직원의 글에는 "내 차 보내줄까?ㅋㅋㅋ"라고 댓글을 단다.
그에게 젊은이들과의 소통 비결을 묻자, 박 회장은 "그들의 다른 점을 인정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박 회장은 "젊은 친구들은 우리 베이비붐 세대가 만들어놓은 풍요롭고 다양한 사회에서 자랐다"며 "좋고 나쁨을 떠나 어떻게 다른지를 보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신입사원뿐 아니라 어린이들을 만나러 서울시 꿈나무마을도 종종 방문한다. 꿈나무마을은 마리아 수녀회가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 박 회장은 재단법인 마리아 수녀회 후원회장이다.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고등학교 친구의 권유로 꿈나무마을을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두산 베어스 선수단은 5년째 꿈나무마을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우울할 줄 알았는데 밝고 순진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편견이었죠.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들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 | ▲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이 2011년 서울시 꿈나무마을에서 어린이와 독서상자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두산그룹 홍보실 |
박 회장은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태워주고 싶어 직원들과 자전거를 사서 꿈나무마을을 방문하는가 하면, 겨울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옷도 지원해줬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웃음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혹시라도 밝은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박 회장은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공헌 활동과 사회 환원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선택사항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조류"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나눔 정신을 확산하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에 통 큰 기부를 몇 년째 이어가고 있다.
박 회장은 기업을 운영하며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때 즐겁다고 털어놨다.
"성경 말씀을 경영에 그대로 투영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힘들어집니다. 하지 못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이건 참 옳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묵상해보면 하느님 말씀과 다른 게 많지 않아요."
박 회장은 이어 "두산그룹 구성원들이 각자 역량을 잘 갖추고 서로를 돌보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집단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 있는 당당함을 보여주고, 투명하고 바른 경영을 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경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출장이 없을 때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틈틈이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기도하는 박 회장은 "내게 신앙은 불완전하지만 중요한 삶"이라고 말했다.
"제가 신앙인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매일 실수하고 고해성사도 자주 봅니다. 다만 제가 신앙을 안 가지고 계신 분과 차이가 있다면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웃음)
두산가(家)의 천주교 신앙은 1896년 서울 배오개시장(현 종로4가)에 '박승직 상점'(두산그룹 모태)이라는 면직물 점포를 연 박승직(베드로, 1864~1950) 거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회장은 박승직 거상의 장남인 고 박두병(바오로) 회장과 부인 고 명계춘(데레사) 여사의 7남매 중 5남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평화신문(2013.05.05)에서 옮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