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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아 따라나선 우리는/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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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큰빛 댓글 0건 조회 1,025회 작성일 2015-11-30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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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이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베드로 사도의 동생이다. 갈릴래아의 벳사이다에서 태어난 그는 형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였다(마태 4,18 참조). 안드레아 사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이끌었다(요한 1,40-42 참조). 그는 그리스 북부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다리를 다쳐 꼼짝할 수 없던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생겼다. 그가 다가오는 것도 함께 있는 것도 지겨웠다. 그가 가까이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런데도 늘 가까이 있었다. 힘겹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받쳐 주고 힘을 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친해지고 고마움을 느낄 무렵, 그 친구는 누군가를 향해 떠나갔다. 이제 내가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지금쯤 또다시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나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을 내어 주고 있을 게다. 친구 이름은 ‘목발’이다.” 

어느 수녀님이 다리를 다쳐 한참 목발에 의지하며 지냈던 시절을 짧은 글로 엮은 거다. 그 수녀님은 여기저기 소임을 옮기며 상처 난 영혼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또다시 누군가를 향해 떠나야 하는 자신의 삶에서 ‘목발’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단다. 사실 한 곳에 머무르지도 않고, 특정 사람에게 매여 살지도 않는 신부나 수도자들의 삶은 ‘목발’과 같은 인생일 게다. 이들은 상처 난 이들에게 다가가 목발처럼 자신을 딛고 일어서도록 다리가 되어 주다가 그들이 홀로 걷기를 하면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떠나는 이들이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용기를 주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다가 아무 미련 없이 떠나는 이들이 신부나 수도자이리라. 

예수님께서는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곧 ‘물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다. 우리 그리스도인 또한 사람 낚는 어부일 게다. 그렇다면 어떤 어부가 훌륭한 어부인지를 생각해 보자. 첫 번째로, 어부에게는 반드시 그물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사로잡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를 통하여 ‘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드러나야. ‘나’에게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사로잡혀야 하는 것이리라.

두 번째로, 어부에게는 배가 필요하다. 배를 타고 나가야 그물을 칠 수 있다. 우리에게 배는? 바로 교회이다. 교회 안에 머물러야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게다. 교회 밖에 있으면 우리의 모든 선행, 기도, 봉사는 마치 육지에서 그물질하는 것과 다름없다. 교회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성사 생활과 계명 등에 충실한 것을 뜻할 게다.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는 것이리라. 

세 번째로, 어부에게 필요한 자질은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잘 알아야 한다. 곧 황금 어장을 잘 찾는 이가 어부의 자질을 제대로 갖춘 이다. 우리에게 황금 어장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처럼 ‘깊은 데’(루카 5,4 참조)이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찾으려면 ‘깊은 데로를 가야만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게다. 

마지막으로, 어부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어부가 그물질할 때마다 고기가 바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많이 잡힐 것이라는 희망으로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어부의 미덕이다. ‘사람 낚는 어부’에게도 이러한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리라.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인디언들은 주변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근거로 그달의 이름을 정했단다. 그들은 그만큼 시적인 영혼을 지녔다고 할까. 그들이 11월에 대해 부른 이름 가운데 몇 가지를 보면, ‘기러기가 날아가는 달’,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등이라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네 제자들을 부르신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고 삶의 자리를 떠난다. 그물을 버리고 고향과 친척과 친구를 떠나 떠돌이의 여정에 나선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셨지만, 지금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길 잃은 양, 상처 난 영혼들이 우리를 부른다. 우리를 애타게 부르는 누군가를 위해 ‘목발’같은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단다. 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는다나. 우리 세례 받은 이는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또 그분을 따르겠노라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선 이다. 가족은 이제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들이고, 직업은 일용할 양식을 위한 주님의 은총과 배려이다. 사실 우리는 주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그러니 언제나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만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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