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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김영식 알로이시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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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창회 댓글 0건 조회 652회 작성일 2019-10-2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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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미사 강론에서 조 신부는 "김 신부님은 조용하게 그러나 선이 굵은 삶을 살았다. 신부님은 민주투사로서 같은 길을 가는 대학생들과 노동자와 지명수배자들에게 물심양면 지원을 한 큰 버팀목이었다. 그 일을 위해 신부님의 생활비는 늘 민주운동을 하다 도망 다니던 사람들의 몫이었다"고 회상했다.

조 신부는 고인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전두환 집권 때 학생운동권이었던 박계동(전 국회의원) 씨와 정순철(주한미문화원 방화사건) 씨를 일본에 정치 망명시켜 한국의 암울한 참상을 온 세상에 알리고자 밀항을 시도하다 실패한 이야기다. "당시 내 역할은 송기인 신부에게서 100만 엔을 받아 김 신부님에게 전달한 일이다. 일본에 박계동·정순철 두 사람을 보내고자 전남 고흥 한 선장을 포섭했는데, 30대 젊은 신부가 경험이 부족해 선수금·중도금·잔금을 한꺼번에 선장에게 주었다. 돈을 다 써 버린 선장이 경찰에 간첩 신고를 했고, 김 신부님과 나는 그 자리에서 체포돼 수갑을 차고 삼천포로 돌아왔다"고 했다. 조 신부는 "다음 날 서울로 압송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4박 5일 취조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김 신부님은 감옥살이까지 하게 됐다"고 전했다.

조 신부는 "우리의 꿈은 우리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는 김 신부님의 말씀 깊이 생각하겠다"며 울먹였다. 고인은 안식년에도 신부라는 신분을 숨기고 빈민가 무료급식소에서 설거지를 하는 등 낮은 곳을 향해 사랑을 실천했다.

백남해 신부는 "김 신부님은 1980·90년대 어두운 시절 등대 같은 분이셨고, 그 빛을 따라 걸어왔다. 우리가 모두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삶을 살기 바란다는 신부님의 뜻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장례미사에 참석한 한 신자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산호동 성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정말 성당 가는 길이 즐거웠다. 김 신부님이 유독 아이들을 좋아해 주일학교 애들이 많이 따랐다. 근엄한 신부님이기보다 같이 어울려 소통하는 분이셨다"고 회상하며 눈물을 닦았다. ㅡ도민일보기사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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