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자들의 모후Pr.야외친목회행사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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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진영(멜키아데스) 댓글 0건 조회 1,120회 작성일 2014-09-29 16:17본문
ㅇ일시 : 2014년 9월28일
ㅇ장소 : 박대식(빅토리노)순교자 묘지 / 김해 진례
증거자들의 모후Pr. 에서는 2014년 9월 28일 김해시 진례면에 있는 박대식(빅토리노)순교자 묘지 를 참배하면서 Pr.친목회 행사를 실시 하였습니다.
단장님을 포함한 많은 단원의 참석으로 박대식(빅토리노)순교자의 굳은 신앙심을 기리기 위해 십자가의 길과 순교자의 성월 기도를 바치면서 전 단원들이 향후 보다 강한 유대감과 신앙심으로 하느님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자는 결의 를 다지며 알차게 Pr.친목회를 실시하였습니다.
- 박대식(빅토리노) 순교자 -
박대식(빅토리노)순교자는 1811년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에서 태어났으며, 입교후 열심히 수계하다 1868년 무진박해를 만나 조카인 박수인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 후 김해 관아로 압송되어 3일간 혹독한 심문을 받은 뒤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압송 되었다.
순교자는 뼈가 부러지고 몸이 뒤틀리는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흔들림없이 신앙을 지켰다. 가족들이 면회왔을 때 험한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웃옷으로 몸을 가렸다고 한다. 대구 감사는 빅토리노를 배교 시킬 수 없음을 알고 사형을 선고 했다.
1868년 8월 27일 순교자는 조카 박수연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자 나이 57세 였다. 순교자들의 가족들은 시신을 모셔와 고향 선영에 모시려 하였으나 마을사람들과 집안 외인들의 반대로 인근 챗골에 평장으로 장례를 지냈다.
그 후 1956년 봄 후손들이 봉분을 크게 하고 순교자부인의 묘도 이장하여 현재의 묘역에 이른다. 10년 뒤 1966년 4월15일 진영본당의 유창호 신부가 그 때까지 전해오지 않던 세례명을 임시로 "로렌죠"라고 명명하고 비석을 세워 순교자의 신앙을 기리게 하였다.
2001년 8월 순교 사학자 "마백락"선생과 순교자 4대손 "박영식(요아킴)"은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과 (병인 치명사적 23권)에 등장하는 " 박 위도서" 가 박대식임을 여러 문헌으로 증명하였다. 이로서 박대식의 세례명은 위도서(빅토리노)로 밝혀졌다.



ㅇ장소 : 박대식(빅토리노)순교자 묘지 / 김해 진례
증거자들의 모후Pr. 에서는 2014년 9월 28일 김해시 진례면에 있는 박대식(빅토리노)순교자 묘지 를 참배하면서 Pr.친목회 행사를 실시 하였습니다.
단장님을 포함한 많은 단원의 참석으로 박대식(빅토리노)순교자의 굳은 신앙심을 기리기 위해 십자가의 길과 순교자의 성월 기도를 바치면서 전 단원들이 향후 보다 강한 유대감과 신앙심으로 하느님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자는 결의 를 다지며 알차게 Pr.친목회를 실시하였습니다.
- 박대식(빅토리노) 순교자 -
박대식(빅토리노)순교자는 1811년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에서 태어났으며, 입교후 열심히 수계하다 1868년 무진박해를 만나 조카인 박수인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 후 김해 관아로 압송되어 3일간 혹독한 심문을 받은 뒤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압송 되었다.
순교자는 뼈가 부러지고 몸이 뒤틀리는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흔들림없이 신앙을 지켰다. 가족들이 면회왔을 때 험한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웃옷으로 몸을 가렸다고 한다. 대구 감사는 빅토리노를 배교 시킬 수 없음을 알고 사형을 선고 했다.
1868년 8월 27일 순교자는 조카 박수연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자 나이 57세 였다. 순교자들의 가족들은 시신을 모셔와 고향 선영에 모시려 하였으나 마을사람들과 집안 외인들의 반대로 인근 챗골에 평장으로 장례를 지냈다.
그 후 1956년 봄 후손들이 봉분을 크게 하고 순교자부인의 묘도 이장하여 현재의 묘역에 이른다. 10년 뒤 1966년 4월15일 진영본당의 유창호 신부가 그 때까지 전해오지 않던 세례명을 임시로 "로렌죠"라고 명명하고 비석을 세워 순교자의 신앙을 기리게 하였다.
2001년 8월 순교 사학자 "마백락"선생과 순교자 4대손 "박영식(요아킴)"은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과 (병인 치명사적 23권)에 등장하는 " 박 위도서" 가 박대식임을 여러 문헌으로 증명하였다. 이로서 박대식의 세례명은 위도서(빅토리노)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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